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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본에서 신전으로 가는 길에는 작은 겨울 꽃과 나무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마물에 의해 매일 같이 짓이겨지는 꽃들을 사람들은 끊임없이, 끊임없이 다시 살려 놓았다. 이것도 사람들의 용기다. 내일 짓밟혀 사라질 꽃과 나무들이어도 오늘을 위해 다시 심은 것이다. 내일을 위해 물을 주는 것이다.
“어떤 용기가 부족 했던 건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궁금해.”
리온은 지체 없이 대답했다. 나인에 대한 것은 항상 궁금하니까. 뭐든 알고 싶으니까. 리온의 말에 나인은 작은 웃음을 쏟아내며 입술을 떼었다.
“제가 리온씨에게, 저만 바라봐 달라고 해도 괜찮은 사람인지에 대해서요.”
리온이 당장에 그렇다는 대답을 꺼내 놓기 전에 나인의 입술이 먼저 다시 열렸다.
“앞으로 영원히 저만 바라 봐 달라고, 이제 남은 인생을 전부 저에게 달라고 말해도 괜찮을지. 리온씨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는 건 아닐지, 리온씨가 받아 줄지 그런 생각들을 항상 해왔던 거 같아요.”
사실은, 그런 약속을 하고 싶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처음 마음을 나눴을 때부터 말이다. 동경 했고, 사랑 했고, 마음을 고백했다. 연애가 시작 되자 당연하다는 듯 매일매일 더 큰 욕심이 들었다. 지금도, 이 순간에도 리온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 해 주는지는 코트 안에 넣어 잡은 손에서 느낄 수 있으면서도 그랬다. 눈만 마주 보아도 알 수 있으면서. 얼마만큼의 사랑으로 저를 보는지 알면서도.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이, 더 깊이 느끼고 싶었다. 그리하여 평생을 기약하는 약속으로 서로를 묶어 저를 제외한 그 어디로도 리온이 시선을 돌릴 수 없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생각만 했던 건……. 용기는 없으면서 욕심만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기적인 생각은 아닐까. 상대는 바라지 않는 일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부담을 주는 건 아닐까. 미움 받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만 하느라 생각을 꺼내 놓지도 못했으면서 마음으로는 온갖 정욕을 잔뜩 채우고 있던 것이다.
“나인.”
나인이 더 말하지 않아도 리온은 안다. 나인이 느꼈던 두려움과 욕심들에 대하여서 리온은 조금도 모르지 않았다. 나인처럼, 저도 사실 항상 느껴 왔던 것이었다. 그때, 마물헌터로 지냈던, 신전의 선생이었던 시절에는 영원 할 수 없는 것에 왜 그토록 욕심을 내는 것인지 이해 할 수 없었어도 이제는 알 수 있다. 나인을 만나 나인과 사랑을 하면서 리온도 깨닫게 되었다. 너무 많이 사랑하여 생기는 두려움과, 욕심과, 애정을 말이다.
나인이 말하는 것들에 대하여서 리온 또한 이미 생각 해 본 적이 있었다. 나인에게 이제 남은 평생을 달라고 말해도 괜찮을지, 제 평생을 주겠다고 했을 때 나인이 받아 줄지. 가만히 고민하다보니 이것이 과분한 것들을 바라는 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나인은 내일을 준 것처럼 자신을 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평생을 달라고 외칠 생각만 하고 있으니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바라는 어린 애 같지 않겠나.
‘나인. 내 남은 생애 전부를 네게 줄 테니, 너도 내게 주겠나?’
그렇게 말한다면 나인은 뭐라고 대답을 할까.
그래, 이렇게 말하겠지.
‘좋아요, 리온씨.’
어쩌면 그 대답을 하면서 울지도 모른다. 웃을지도 모른다. 울면서 웃을지도 모른다. 나인의 표정까지 헤아리려면 어느 정도 생각 할 시간이 필요 했지만 나인의 대답만큼은 확신 할 수 있었다. 나인이 기쁘게 호응 할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도 리온은 매 순간 고민 했다. 과분한 것. 너무 욕심을 내는 것. 분수에 맞지 않는 것. 내일 갑자기 생이 사그라들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평생을 말하는 것. 그것이 너무 이기적인 일은 아닌지. 그렇게, 계속 그런 생각을 했다. 나인과 똑같은, 그런 생각. 그러니 리온 저 또한 나인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용기는 없으면서 욕심만 있었기에 마음에 맴도는 말은 조금도 뱉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