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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례가 없는 예식에서 신랑과 신부는 서로에게 편지를 읽어주었다. 성혼선언문은 함께 소리 내어 읽었다. 축사는 없었으나 축가는 신랑 측 친구가 한 번, 신부 측 친구가 한 번 나란히 불렀다. 부모에게 인사를 드리면서 신랑도, 신부도 많이 울었다. 제 아들과 딸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는 모습을 보면서 양가의 부모님들이 일어서 새 식구를 안아주고, 또 떠나보내기도 하며 함께 마음을 나누었다.

  식이 진행 되는 내내 나인과 리온은 말이 없었다. 예식에 집중한 상태이기도 했고 생각이 깊어지기도 해서였다. 나인은, 언젠가 자신들에게도 이런 축복의 순간들이 올까.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 리온과 지내는 순간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리온과 마음을 나누는 모든 순간들이 단 한 순간도 빠짐없이 설렜다. 리온을 생각 할 때마다 심장은 지체 없이 튀어 올랐고 리온의 말 한 마디에 뱃속에 자르르 긴장감이 맴돌았다. 리온과 함께여서 느낄 수 있는 사랑의 즐거움들은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 중 하나일 정도였다.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만 이 사람과 평생을 내어 줄 약속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올까. 모두의 앞에서 영원을 선언하고, 모두의 앞에서 축하 받을 날들이 올까. 빠른 판단력을 가진 나인은 그 날이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은 나인 저에게나, 리온에게나 눈앞에 펼쳐진 더 중요한 것들이 있었다. 언젠가라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할 바에는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앞서 있는 중요한 것들 때문에 리온을 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말이다.

  그리하여 나인은 마음 깊은 곳에서 끄집어 올려진 이 욕심들을 지우려 애썼다. 예식 후 늦은 점심식사를 하면서는 끊임없이 리온에게 말을 걸며 생각을 떨쳐내기도 했다. 리온은 나인의 말을 가만히 들으며 대답을 하기도 하고 질문을 하기도 하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같은 곳에서 일하며, 매일 같이 얼굴을 보는데도 무슨 할 말이 그렇게나 많은지 이야기는 끊어지지가 않았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디저트를 먹는 와중에 나인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리온이 나인을 따라 식기구를 내려놓았다.

 

  “왜 그래?”

  “아, 일손이 부족한가 봐요. 대장님.”

 

  나인의 말대로 빠르게 음식이 준비 되지 못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예상한 수를 웃돌아 하객들이 찾아 왔기 때문인 듯 했다. 나인이 돕고 싶어 하는 듯 해 리온이 먼저 팔을 걷어 붙였다.

 

  “나는 먹을 만큼은 다 먹었는데. 너는 어떠냐, 나인?”

  “저도 배부르게 먹었어요. 대장님 괜찮으시겠어요?”

  “그럼.”

 

  고아원에 전달 할 물건이 있어 갔다가 요리도 해 주고 이불 빨래도 해 주는 게 나인인 것을 아는 리온이니 어려운 일에 손을 내밀고 싶어 하는 나인의 마음도 모르지 않았다. 결국 리온의 배려로 나인도 일어나 소매를 걷었다. 주방장에게 돕고 싶다고 얘기하자, 주방장은 한사코 거절하다 결국 고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시간이 지체 되어 예식의 뒷마무리까지 도와주고 나자 저녁 시간이 되었다. 두 사람은 다시 허기가 졌다. 신랑 신부가 도와 준 것에 대해 예를 표하며 저녁 식사를 대접 하려 하기에 나인과 리온은 거절하지 않았다.

  거기서 식사에 곁들여 술을 마셨고 나인이 조금 취했다. 리온은 제 코트 안에서 나인의 오른 손을 다시 한 번 제대로 잡아 쥐었다.

 

  “맞아. 그러고 보니 오늘 들은 말들 중에 기억나는 게 있어요.”

  “뭔데?”

 

  두 사람 모두 사사로운 소문이나 크고 작은 얘기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었다. 신전에서 일하고 있으니 민간에 어떤 이야기들이 흘러나오는지도 중요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한쪽의 의견이나 사상에만 동화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버릇처럼 여러 말들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다.

 

  “다들 결혼에 대해서 ‘용기’라는 말을 하더라구요.”

 

  리온은 그 말에 동의 했다. 그러니까 오늘 그런 말들이 많이 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의견 자체에 동의 했다는 뜻이다.

  마물 헌터로 지냈을 때에도 결혼을 선택한다는 건 용기 그 자체였다. 매일매일 목숨이 오락가락 하고 있으니 결혼을 생각 한다는 것 자체가 상대방에 대한 미안함이 되었다. 오늘 결혼 해 내일 혼자가 될지도 모르는 곳이지만 그 편치 못한 마음을 딛고 일어난 사람들이 행하는 것이 결혼이었다. 어떤 이들은 사람을 모아 성혼성언만 했고, 어떤 이들은 그룹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이를 골라 주례를 세우기도 했다. 꽃도 나무도 없는 황무지에서도 평생을 내어주겠다는 약속은 있었던 것이다. 리온은 그런 이들을 보면서 대단한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 연애는 이 사람과 만나 보는 중, 이라고 말하는 것이지만 결혼은 이 사람을 택했다, 라는 뜻이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 중에 이 사람이 가장 좋다는 의미. 혼자 걸어 왔던 삶의 길을 이제 이 사람과 함께 걸어가겠다는 선언. 이 사람에게 모든 것을 내어 줄 것을 약속하고, 어떤 힘듦과 고난도, 기쁨도 행복도 함께 나누겠다는 진심. 이 사랑을 그 어떤 것도 끊어낼 수 없으리라는 것에 대한 다짐과 각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데는 용기가 가장 중요했다. 사랑은 당연한 것이고 그와 함께 용기가 없이는 아무것도 약속 할 수 없을 것이다.

 

  “저는, 용기가 부족 했던 것 같아요.”

 

  나인은 리온을 보지 않았으나 리온은 제 왼 손을 잡고 걸어가는 나인을 보았다. 발갛게 달아 오른 귀가 추워서 인지 부끄러운 이야기를 시작 할 것이라서 인지 알 수 없었지만 리온은 멈춰 서지 않았다. 달빛이 밝고 그 곁에 떠오른 주벤은 붉게 빛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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