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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처음으로 참여한 귀족가 파티는 화려함 그 자체였다. 빛이 넘쳐흐른 것처럼 보이는 샹들리에, 벨벳 재질의 두꺼운 커튼, 틀이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없다고 착각할 정도로 반짝하게 닦인 유리창, 한눈에도 비싸 보이는 옷을 걸친 사람들. 둥근 테이블 위에는 쉽게 구하기 힘든 류의 음식들이 가득했고, 파티장을 오가는 서빙을 하는 이들의 손에는 억 소리가 날 정도의 고급 와인이 잔뜩 놓인 쟁반이 들려있었다.

 

 키가 테이블보다 조금 작았던 어린 베논은 한 손에 초콜릿을 덧바른 마들렌을 든 채 바닥을 응시했다. 친절을 가장하고 다가와 친한 척을 하던 어른들의 이름을 하나씩 정리해 봤지만 그중 기억나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거의 비슷한 얼굴이었고, 꼭 외워야만 한다는 것처럼 이름을 알려준 후 똘망똘망하다, 잘생겼다, 크면 이스델라의 기둥이 될 것이다 같은 칭찬을 늘어놓는 것까지 하는 행동도 비슷했다.

 지루했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놀러 온 것이 아니라 야니크가의 차남으로서 참석한 자리이기 때문에 아무리 싫어도 아닌 척을 해야 했다. 들고 있던 마들렌을 먹기 싫었지만, 친한 척을 하던 수많은 어른 중 한 명이 쥐여주었기 때문에 먹어야만 했다.

 주변을 힐끔거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인상을 찌푸렸다. 조물거리며 만졌더니 손가락에 빵가루가 잔뜩 묻어있다.  어떡하지.

 

 고민을 하는데 시야에 불쑥 들어온 밝은 은빛의 정수리. 두 가닥의 삐죽이는 머리카락이 꼭 덜 자란 새싹 같았다. 순식간에 마들렌의 반절 이상을 씹은 입술이 손가락에 살짝 닿았다.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자 녹은 초콜릿에 갈색으로 변한 입술이 씨익 올라간다.

 곧 불룩 튀어나오는 볼. 하얗고 찰떡같은 얼굴이다. 저와 비슷한 또래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아무리 높게 생각해도 나이가 저보다 어릴 것 같이 생긴 아이는 빼앗아간 마들렌을 맛있게 먹었다. 우물거리며 맛을 음미하는 듯 눈을 감았다가 뜨면 동그랗고 큰 금색 눈동자가 반짝이며 빛났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남아있는 부분을 내밀었다. 아이는 손으로 받아 가는 대신 빵이 전부 사라지고 말끔해진 입을 아아~ 소리 내며 크게 벌렸다. 자꾸 만지작거린 탓에 원래의 모양보다 눌린 끝부분을 조그마한 혓바닥 위에 얹어주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행동이다. 그것도 오늘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음식을 먹여주었다. 가슴 안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으며 제 행동이 잘한 행동인지 곱씹어 보았다. 혹시 야니크가의 차남으로서 실례되는 행동을 한 것은 아닐까.

 

 “야니크?”

 

 그 사이 앞에 서 있던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으응, 나보다 형이라고 들었는데, 형이라고 불러도 돼?”

 “언제 봤다고 그런 식으로 친근하게 부르려 하는 거지?”

 “지금 봤잖아~”

 

 이상한 애다. 형이라는 말은 누구한테 들은 거지? 예상할 수 있는 사람은 많았다. 아마 이 파티장에 있는 사람들 전부가 제 나이를 알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야니크가에 잘 보이고 싶어서 이름을 외우고 나이를 외운 뒤, 다정한 척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어른들의 자식 중 한 명이 아닐까.

 이제라도 모르는 척하고 몸을 돌리려는데, 나이가 지긋한 남자 한 명이 다가와 아이의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말했다.

 

 “도련님. 예의를 갖춰서 말씀하셔야지요.”

 “지금 충분히 예의 갖췄는걸. 아니야?”

 “아닙니다. 상대방의 이름을 묻고 싶을 때는 먼저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앞으로의 파티에서는 그러셔야 합니다.”

 “이런 곳에 또 와야 하는 거야? 싫은데. 재미없잖아.”

 

 노인은 난감한 표정으로 양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게 돌리고 목소리를 낮추라는 듯 아래쪽으로 휘적였다. 그리고 제가 서 있는 방향으로 상체를 틀더니 이마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희 도련님께서 또래와 인사를 나누는 일은 처음이시라 실례를 범한 점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

 “대신 제가 인사를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라는 뜻으로 돌아서려고 약간 틀었던 발을 바로 했다. 알아들었는지 노인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커다란 손으로 옆에 서 있는 아이를 가리켰다.

 

 “이분은 피비앙스가의 도련님으로 이름은 아우릭 D. 피비앙스 라고 하십니다.”

 

 베논은 눈을 크게 떴다. 여지껏 지나간 어른들과는 다르게 이미 유명하고, 집에서도 여러 번 들었던 이름이었다. 피비앙스. 그 집에 저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산다는 말은 들었는데, 저렇게 하얗고 작은 아이인 줄은 몰랐다.

 놀란 표정을 애써 지우고 손을 불쑥 내밀었다. 이런 식으로 남에게 인사를 받는 것도 그렇지만, 타인에게 먼저 손미는 일도 처음이었다. 아마 식구들이 알면 놀라겠지.

 

 “베논 야니크다.”

 

 아우릭은 내민 손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민망할 정도로 오랫동안 지켜보기만 했다. 곁에 있던 노인은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이럴 때는 악수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일러주었지만 아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혹시 이런 것도 실례가 되는 걸까. 생각해보니 저도 제 또래의 누군가와 인사를 나눈 적이 없었다. 어른들이 데려와 억지로 고개를 숙이는 아이는 있었어도 불쑥 다가와 얼굴을 마주 보고 본인의 의지대로 인사를 하는 아이는 없었다.

 이렇게 하는 게 아닌가? 어른들이랑 온 아이는 전부 지금처럼 했는데. 야니크 이름에 누를 끼친 행동이면 어쩌지.

 

 내민 손을 거두려고 우물쭈물하는데 손바닥과 손등에 동시에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하얗고 작은 두 손이 제 손을 꼬옥 잡고 있었다. 그는 해맑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인사도 했으니까 이제 형이라고 불러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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