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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은 사람들로 복작거렸다.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점심시간인 것 같다. 손으로 직접 써놓은 여러 개의 메뉴 중 하나를 고르고 의자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앞에 들이밀어진 뜨거운 철판. 그 위에 두툼한 고기가 먹기 좋은 정도로 익어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나이프와 포크까지 챙겨온 단원은 인사를 꾸벅하고 사라졌고,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제 근처에는 앉지 않았다.
포크 끝으로 고기를 쿡 찍고, 나이프를 밀어 넣었다. 서걱거리며 썰리는 감촉을 느끼다가 지금 별로 입맛이 없음을 깨달았다. 먹기 싫다기보다는 잘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작게 썰린 것을 입에 넣으니 혓바닥 위로 약간 달달하면서 새콤한 소스의 맛이 먼저 퍼졌다. 어금니로 살짝 깨물자 안에 가득 담겨있던 육즙이 향긋하게 퍼졌다. 고기 육질도 부드러웠다.
한 조각 먹고 나니 손이 가질 않는다. 대화를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멀리 들렸다. 어린 시절 처음 갔던 귀족 파티장에서 들었던 어른들의 수다처럼 머리보다 한참 높은 곳에서 웅성거리는 것 같다.
포크를 내려놓고 이마를 만지작거렸다. 몸을 이리저리 기울일 때마다 가슴 위에 있는 반지가 살짝씩 자리를 옮겼다.
이대로 두고 올라갈까. 남은 일도 있고, 입에 받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으면 속만 더부룩해질 뿐이다. 고민을 하는 동안, 옆자리 의자가 드륵 뒤로 빠졌다.
누군지 쳐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검은 장갑과 긴 망토, 익숙한 향기.
“왜 안 먹고 있어?”
“아우릭.”
“응?”
고기 위에서 머물던 시선을 돌렸다. 삼일 전과 다를 바 없는 미소로 저를 바라본다. 아무 일이 없었다는 태도에 특별한 말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이름을 부르고 말이 없자, 그는 익숙하다는 듯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철판을 본인 앞으로 끌어갔다.
“식으면 맛없어~ 땀 흘려 정성스럽게 만들어 준 음식인데 맛있게 먹어야지.”
부드러운 손동작으로 한 조각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내더니 아아, 소리를 내며 제 입 가까이로 들이댔다. 고개를 뒤로 빼며 인상을 쓰자 어깨까지 살살 흔들며 아아아, 한다. 꽂히는 시선이 느껴졌다.
민망함 때문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미열로 뜨거웠던 귀에 심장이 옮겨가 펄떡이며 뛰는 느낌. 원래 장난기가 많고 자주 하는 행동이라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은 별로 없다는 걸 알면서도 주변 눈치를 보게 됐다.
단호한 눈빛을 보아하니 그가 원하는 행동을 할 때까지 이러고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다물었던 입술을 작게 벌리자 만족스러운 미소를 하며 포크에 찍힌 고기를 입안으로 쑥 넣어준다.
어금니 안쪽으로 굴러간 것을 씹었다. 고무호스 같았다. 특별히 골라 좋은 질의 고기였고, 육즙이 퍼지고 소스가 맛있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왜 아까보다 더 맛이 느껴지지 않을까. 억지로 먹어서 그런가. 목 아래로 잘 넘어가지 않는 것을 넘기고 나니 기운이 쭉 빠졌다. 차라리 밍밍한 죽을 시킬 걸 그랬다.
아우릭은 제가 음식을 삼키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다음 조각을 썰었다.
“또 밥 안 먹고 일만 했지? 자리에 앉아서 움직이지도 않고 있으면 병난다니까.”
“네가 자리에 없으니 나라도 일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크루세이더의 일은 돌아가지 않는다. 간부 둘이서,”
“자, 아아~”
듣기 싫다는 뜻이다. 알았으니 잔소리하지 말고 먹으라는. 고개를 저어 보이니 웃음기가 지워지지 않은 목소리로 덧붙인다.
“다 먹으면 뽀뽀해줄게.”
베논은 그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궁금하지 않았다. 진심이라면 난감할 것이고, 진심이 아니라면 상처를 받을 것이다. 안 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우리는 헤어졌을 텐데? 저는 조심스럽게 청혼을 했고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렇다면 수많은 다른 연인들이 그러하듯 거절을 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었나.
제 옆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더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기를 들이밀었다. 얼떨결에 입을 열어 먹으니 검은 손이 곧 엉덩이라도 두들겨 줄 기세로 제 등을 쓰다듬었다.
“둔하기만 한 게 아니라 기억력도 안 좋네, 베논은.”
“무슨 소리냐.”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나, 이 둔탱이가 혼자 헤어졌다고 생각했나 보네.”
중얼거리면서 한 조각 더 썰어내 본인의 입으로 넣은 그는 눈썹을 찡그렸다. 하얀 얼굴 위로 근심인지 화인지 모를 감정이 어스름하게 비췄다.
“내가 왜 베논이 말한 거 거절했다고 생각해?”
“.....”
“정말 싫어서?”
동의하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고개만 작게 끄덕였다. 그러자 어휴, 하는 한숨과 함께 나이프와 포크를 탁 소리 나게 내려놓는다. 주위에서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대놓고 쳐다보지는 못하고 힐끔거리기 바쁘던 시선들. 그의 행동에 다들 식사에 집중하는 척했다.
눈을 마주칠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렸다. 멍하니 보낸 시선이 본인과 닿았다고 생각한 단원 하나가 급하게 수저질을 하다가 밥풀을 상에 튀겼다.
싫으니까 싫다고 거절을 했겠지, 다른 이유가 있을 리가 없다. 설마 이런 일까지 장난을 친다고 정말 싫은 게 아니라 정말 정말 싫어서라고 한다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지.
“그 말을 정말로 믿으면 어떡해, 베논 둔탱이 바보야.”
“..싫다고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잘못된 건가.”
“아니이, 그야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건 맞는데~”
끄응, 하며 손톱 끝으로 길쭉한 식탁을 톡톡 치던 아우릭은 한참 동안 조용했다. 저 조그마한 입술에서 무슨 소리가 나올지 불안했다.
지금이라도 듣기 싫다고 하는 게 좋을까.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로 돌아가는 방법도 있었다. 그는 일을 하기 싫어하니까 따라오지 않을 거라는 확신까지 들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일이 싫어도 할 말이 끝나지 않았다면 따라오겠지. 조금만 곱씹어 보면 일이 싫어 말을 포기한다는 것만큼 웃긴 생각도 없는데, 열이 오른 머리는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흐음, 아니면 으음, 정도의 소리만 내다가 침묵이 이어지더니, 곧 제 턱을 부드럽게 움켜쥔다. 이쪽을 보라는 말 대신 직접 고개를 잡아 돌리는 손길을 뿌리치지 않았다. 반짝이는 금빛 눈동자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다.
“우리 어릴 때 기억나?”
“언제를 말하는 거지?”
“내가 아홉 살이고, 베논이 열 살 때. 삼일 전에 했던 말 똑같이 했잖아,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