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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건은 호롱불을 밝히고 상흔을 더 자세히 살폈다. 깨끗한 물을 담아와 상처를 씻어낸 뒤 화단의 채송화를 뜯어와 즙이 나오도록 짓이겨 환부에 붙이고, 새 면포로 다시금 상처를 동여맸다.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베논은 로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그의 행동을 눈에 담았다. 처치를 마친 로건이 베논의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었다.
“고맙군.”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로건이 저에게 뜨겁게 따라붙는 시선을 피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로건은 자객의 발소리를 처음 들었을 당시의 상황을 회상했다. 경황이 없어 미처 생각치 못한 것이 이제서야 고개를 들었다. 왜 나를 죽이려 들었을까. 고민해도 해답을 찾을 수 없어 로건은 조심스레 베논에게 물었다.
“혹, 그들이 왜 저를 노렸는지 아십니까?”
“…짐작이 가는 바는 있다.”
“…그게 무엇입니까?”
베논이 손으로 턱을 매만지고 로건에게 되물었다. 혹, 유(柳)나라의 혼인제도에 대해 아는가? 로건이 고개를 저었다. 아는 바가 없습니다.
“유(柳)나라는 황제를 제외하고 기본적으로 일부일처제이다. 황제 또한 들일 수 있는 후궁의 수가 정해져 있지. 즉, 황실의 외척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적다는 말이다.”
“…그렇군요. 몰랐습니다.”
“현재 유나라의 황제는 후궁을 더 이상 들일 수 없다. 아무리 외척의 권력이 탐나도 감히 황제의 사랑을 받는 후궁을 건드릴 생각은 못하겠지. 해서 황실에 연을 대기 위해 내 옆자리를 탐낸 자들이 썩어 넘쳤었다.”
옐킨의 왕권이 선대 그 어느 왕들보다 강력하다는 것은 로건도 알고 있었다. 그가 아끼는 후궁들을 밀어내는데 드는 위험부담은 커 외척이 가질 수 있는 권력이 탐나도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그 힘에 가 닿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로건이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얼마 되지 않은 계약적으로 맺어진 혼인. 서로 사랑하지 않는 부부. 그리고… 상대적으로 약한 나라의 황태자.
“그 말은 즉… 저를 얕잡아 보고, 이 자리를 차지해 외척이 되고 싶어 자객을 보냈단 말씀이시군요”
베논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건이 하, 헛웃음을 내뱉고 몸을 웅크렸다. 유(柳)나라의 대신들마저 자신을 업신여길 줄이야. 사무치는 한에 로건이 무릎에 고개를 파묻었다.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어딘가 무너진 듯한 로건의 모습을 눈에 담은 베논이 그에게 말을 건넸다.
“그들이 사람을 잘못 본 것 같군.”
“…예?”
“너는 약하지 않다.”
뜻밖의 말에 로건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베논을 응시했다. 베논의 눈은 흔들림 없이 올곧았다. 그 눈빛에서 진심을 읽어낸 로건은 답할 말을 머릿속으로 더듬다 베논이 자신의 머리를 약하게 쓰다듬고 일어나는 것에 잠시 사고가 멈춘 것을 느꼈다.
“이곳의 경비를 강화하라 이르겠다. 고된 일을 겪어 피로할 테니 이만 쉬도록.”
베논이 문을 닫고 나가자 로건은 방 안에 혼자 앉아 멍하니 그가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여차 로건의 방에 바람이 들어올까 문을 제자리에 꾹 밀어 넣는 모습이 아직도 선명했다. 그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를 어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복잡한 머릿속과는 반대로 몸은 점차 먹을 머금은 종이처럼 축 늘어지고 있었다. 베논의 말대로 로건은 누운 지 몇 분도 되지 않아 잠의 늪으로 굴러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