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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한 마디의 흐트러짐 없이. 조금도 호흡이 끊어지지 않은 모습으로 나인은 대답했다. 그렇게 대답하는 얼굴에 눈물이 잔뜩 고여 있어서 리온은 나인의 손을 붙든 채 제 오른 손을 들어 손등으로 나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손길을 받는 나인이 코를 훌쩍 거렸다.

  레본에서부터 신전까지 걸어 온 길이 마치 하나의 삶을 약속한 두 사람이 함께 걸어 온 화이트 카펫처럼 느껴졌다. 멋들어진 조명도 없고, 어여삐 장식 된 꽃들도 없지만 나인과 리온 두 사람에게는 이곳이 영원을 약속 할 성혼선언의 자리였다.

  마주 잡은 손에 단단히 힘을 준 리온이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부끄러워 입술이 잘 떼어지지가 않았다. 나인도 그랬다. 술기운은 모조리 달아났으니 이것은 오늘 하룻밤의 장난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리온은 반짝 반짝 빛나는 눈을 한 나인을 보며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마음으로 입술을 떼었다.

 

  “신랑 나인은 신랑 리온을 평생의 반려자로 맞이하여 어느 때나 무슨 일에나 신뢰와 믿음으로 대하고, 끊임없이 사랑하며 서로 배우고 한 걸음, 두 걸음 매일의 삶을 함께 걸어가겠습니까?”

 

  두 사람의 얼굴이 붉었다. 부끄럽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하고. 가슴 깊이 끼쳐드는 감정을 이미 함께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마주 붙들고 있는 손이 젖어든다. 누구의 긴장인지 알 수 없어 웃음이 났다.

 

  “네.”

 

  떨리는 목소리로 단단히 대답을 전한 나인이 흠흠, 리온처럼 목을 가다듬었다.

 

  “신랑 리온은 신랑 나인을 인생의 동반자로 맞이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끊임없이 서로를 생각하며 아끼고 사랑하여 슬픔을 나누고 기쁨을 함께하며 살아가겠습니까?”

  “네.”

 

  리온이 대답 할 때 두 사람이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재미있고, 즐겁고. 구름 위를 걷는 듯 긴장이 흐르고, 따뜻한 이불 속에 있는 듯 포근한 감정들이 두 사람의 안에 잔존했다. 이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로 나인은 리온을 보며 질문 했다.

 

  “사랑만으로 모든 게 다 괜찮아 질 수 있을까요?”

  “나는 그렇게 믿어.”

 

  리온의 말에 나인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정작 물어 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사랑하면 모든 것을 믿게 되고, 사랑하면 모든 것을 견딜 수 있게 되니까. 사랑해야 아끼고, 사랑해야 나누고, 사랑해야 함께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

 

  생각에 잠긴 나인을 두고 리온은 제 생각을 털어 놓았다. 나인은 대답이 없었지만 리온은 나인이 생각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나인이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좋았고, 똑같은 생각을 한다고 말해도 좋았다. 나인과 함께 나누는 것 중에 그 어떤 것이 족하지 않을까. 모든 것이 다 좋아서, 모든 것이 다 행복해서. 나인과의 대화는 언제나 즐거웠다.

  리온이 나인을 기다리고, 나인은 조용히 고민 하던 중에 손 안에 가득 했던 땀이 식었을 때였다. 나인이 조금 숙이고 있던 고개를 다시 들어올렸다. 떼어내는 입술 새로 작은 구름이 흩어졌다.

 

  “그럼 리온씨는 지금까지 저를 사랑해서 저를 믿어 주셨고, 저를 사랑해서 위로 해 주셨고, 저를 사랑해서 찾아 주셨고, 저를 사랑해서 걱정 해 주셨던 거네요.”

  “맞아.”

  “저를 사랑하지 않았으면요?”

  “나인. 내가 널 사랑하지 않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

 

  나인의 질문에 리온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곧바로 튀어나온 말은 언제든 쏟아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너는 그렇지 않을지 몰라도 나는,”

  “저도 그래요. 저도, 제가 리온씨를 사랑하지 않을 일은 없어요.”

 

  급히 리온의 말을 가르고 들어 선 나인이 사랑을 쏟아내었다. 리온은 웃었고 나인은 굳은 얼굴로 다시 한 번 두 손 위에 간절한 마음을 담아내었다.

 

  “제 남은 생애에도 영원토록 함께 해 주세요. 저만 사랑 해 주세요. 제 손을 잡아 주세요. 저와 함께 걸어 가 주세요. 저도 그럴 게요. 저도 그렇게 할게요. 제가 리온씨의 삶에 있게 해 주세요. 좀 더 욕심내도 괜찮다고 해 주세요. 더 많이 끌어안고 더 많이 사랑을 말,”

 

  나인의 말이 계속 되고 있을 때 리온이 나인에게로 얼굴을 가까이 했다. 나인의 입술 위로 입술을 겹치고 숨이 맞물리자 나인이 리온의 입 안을 가르고 들어가며 입 안을 훑었다. 서로의 입술을 보드랍게 물어내고 숨을 삼켜냈다. 사랑을 갈구 하는 모습으로 나인이 리온 쪽으로 달라붙었다. 리온이 뒤로 밀려 나자 나인이 손을 떼어 리온의 얼굴을 양 손으로 붙들었다. 리온은 나인을 끌어안으며 제게 붙어서는 나인을 받아들였다. 언제나 그랬듯, 늘 그랬듯. 리온이 기쁨을 담아 몸의 어디든 열어주면, 나인은 그 안에 가득히 들어가 사랑을 채웠다.

  애틋한 마음을 담았던 입술을 떼어내고서 나인과 리온은 이마를 서로 마주 대며 잠시 숨을 골랐다. 와중에도 나인이 리온의 입술 위로 쪽쪽 아기 새처럼 입을 맞추어 두 사람이 푸흐흐 웃음을 터트렸다.

  이마를 떼어내고 다시 나인이 오른 손을 내밀고, 리온이 왼 손을 내밀어 마주 잡았을 때 나인이 리온의 왼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하얗고 긴 왼 손 네 번째 손가락 위를 쪽, 빨아내며 붉은 반점을 만들어 냈다. 가만히 제 왼 손의 약지를 내려다보던 리온이 나인의 왼 손을 잡아 올렸다. 똑같은 반점을 만들어 내자 나인이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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