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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리온

태랑, 나인리온

오전 중 함께 외출 했던 나인과 리온이 다시 신전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어둑어둑한 밤이었다. 다른 대원들이라면 이렇게 늦은 시간에 신전 밖에 있는 것에 대하여 외출 허가서를 받아야만 했지만 그래도 대장과 부대장이라 직위 덕분에 편한 것도 있었다.

 

  “날이 꽤 추워졌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인은 좀 더 리온 쪽으로 붙었다. 리온은 피하지 않았고 나인의 말에 꼭 붙잡고 있던 손을 제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나인이 작게 웃는 소리가 나서 리온의 귀에 아주 살짝 열이 올랐다. 리온도, 나인도 제대로 알지 못할 정도였으므로 금방 가라앉았지만 말이다.

 

  “대장님, 내일 계획하신 일정 있으세요?”

  “음…….”

 

  리온은 아직 정하지 못했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한껏 고개를 앞으로 빼 리온의 얼굴을 보던 나인이 하하 웃으며 리온의 팔에 폭 기대며 걷다 다시 몸을 바로 세웠다.

 

  “아무 것도 하실 일 없으시면 저랑 같이 있어요.”

  “그래.”

 

  오늘 따라 사랑이 넘치는 말을 하는 나인은 살짝 취기가 돌아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그리 많이 마시지는 않았으니 신전에 도착 할 즈음이면 술기운이 다 사그라질 정도였다.

  나인이 기분 좋게 취한데 이유가 있긴 했다. 첫 째는 결혼식에 갔기 때문이었고 둘 째는 한 때 신세를 졌던 좋은 주방방님께 리온을 소개 해 드린 것에 있었다. 잘 사귀고 있는 애인이라는 말은 하지 못했어도 결혼식에 데려 간 사람이라면 눈치 빠른 이는 얼마든지 그 의미를 알았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 의미에 대해서는 나인과 함께한 리온도 잘 알았다. 그래서 리온은 나인이 제게,

 

  “대장님. 주방장님 따님 결혼식에 저랑 같이 가실래요?”라고 말했을 때 데이트 하자는 말에 응 할 때처럼 그래, 그러자고 곧장 대답 해주지 못했다.

 

  “내가 가면 네가 불편 해 질지도 모르는데.”

  “왜요?”

 

  싱글생글 웃는 얼굴이 사랑스러워서 리온은 아껴야 할 말을 그대로 잘 아껴두었다.

 

  “같이 가서 대장님을 소개 하고 싶어요. 저랑 같이 있어 주시는 분이라구요.”

  “그러냐.”

 

  나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얼굴을 보며 어떻게 안 되겠단 말을 할 수 있을까. 약속이 있었다 해도 흔쾌히 취소하고서 나인과 함께 했을 것이다.

  청첩장을 받은 일자는 예식 날의 이주 전이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나인과 리온은 평소처럼 일을 했다. 별 다른 큰일 없이 해야 할 일을 하던 도중 약속일이 다가왔다. 평소 옷을 넉넉하게 입는 리온은 예식에 참여 하는 만큼 잘 차려 입었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짙은 회빛 정장 바지에 검은 목폴라를 입고 그 위에 정장 바지와 세트인 재킷을 걸쳤다. 어두운 청록색 계열의 모직 롱 코트를 덧입고 평소엔 거친 손으로 마물을 잡느라 잘 착용하지도 않는 손목시계를 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무 지나치게 입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자리가 자리인지라 리온은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밖에 입지 않는 것들을 꺼낸 것이었다.

  신전 앞에서 나인과 만났을 때 나인은 리온을 보며 맑게 웃었다. 나인은 검은 정장 바지에 화이트 셔츠. 톤이 짙은 푸른 넥타이를 매고 니트 조끼를 덧입었다. 잿빛의 도톰한 롱 트렌치코트는 리온이 입은 정장 바지와 색깔이 비슷했다. 평소 신던 흰 운동화를 벗고서 알맞게 신은 검정색 구두가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고 나인에게 무척 잘 어울렸다.

  리온은 나인의 얼굴을 보면서 제 얼굴에 화뜻화뜻한 열기가 오르는 것을 느꼈다. 저를 바라보며 곱게 미소 짓는 나인의 눈에서 꿀이 떨어지고 있음을 안 것이다. 제 눈도 그럴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낯이 뜨거웠다. 분명 저가 사랑을 담은 나인의 눈을 알았듯, 나인도 그럴 것이다.

 

  “갈까요.”

  “엉.”

 

  고개를 끄덕인 리온이 나인과 함께 걷기 시작했다. 평소 보기 어려운 나인의 모습을 보아 그런가 마음이 몽글몽글 했다. 들떴다는 표현을 하는 것도 옳을 것이다. 매일 비슷한 루트를 돌며 데이트를 하던 것에서 벗어나 평소와 다른 옷을 입고 평소와 다른 기분으로 걷는 것이 즐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즐거움은 나인에게도 느껴졌는지 나인의 목소리도 한층 긴장이 풀어져 있었다.

  함께 레본으로 이동한 나인과 리온은 주방장의 가게로 향했다. 가게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작고 소담한 장소였지만 식의 주인공을 아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모여와 축하를 말하고 있었기에 가게의 크고 작음은 상관이 없어보였다. 인사를 마친 사람은 바깥에서라도 식을 보기 위해 기다렸고 그 시간이 결코 즐겁지 않은 얼굴이 아니었다.

  나인은 식이 시작되기 전에 도착 해 주방장을 찾았다. 꾸벅 인사를 하자 주방장이 나인을 보고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본인이 신전으로 초대장을 보냈지만 정말 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나인!”

  “안녕하세요, 주방장님.”

  “어이구. 오랜만이구나! 정말 와 줄줄 몰랐어.”

  “주방장님 초대인데 꼭 와야죠.”

  “잘했다. 정말 잘했어. 편하게 먹고 마시다 가거라, 나인.”

 

  네에, 하고 대답하며 즐겁게 웃는 나인을 보던 주방장의 시선이 돌아가자 나인이 얼른 리온을 소개했다.

 

  “주방장님. 소개 해 드릴게요. 이 분은 신전 가디언 피스메이커 대장님이신 리온씨예요. 저를 신전으로 불러 주신 분이세요.”

  “안녕하세요. 리온입니다.”

 

  리온이 악수를 하려 손을 내밀자 주방장이 얼른 손을 내밀어 잡았다.

 

  “반갑습니다. 나인이 갑자기 일을 그만 두고 신전에 가기로 했을 때 깜짝 놀랐는데. 지금 나인을 부른 분이 누구신지 알게 되었군요.”

  “하하. 나인을 그때 신전에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보내주어야지요. 나인이 있어 좋았던 것은 분명하지만 나인은 이곳에 있을 아이가 아니었는걸요.”

 

  그 말을 한 주방장이 나인을 보며 웃었다. 그때 리온은 나인이 힘들어 할 때 도움을 주었다는 주방장이 얼마나 나인을 아끼는지 알게 되었다. 그런 사람에게서 나인을 데려 온 기분이 들어 미안한 한 편으로, 주방장이 나인은 신전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 해 준 것에 대해 위로도 받았다. 말 몇 마디로 두 가지 일을 해 낸 주방장을 보면서 나인은 왜 이 주방장의 곁에 있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자, 먼 걸음을 하신 귀한 분들이니 이리 밖에만 서 있지 마시고 안으로 들어 가셔서 편히 계십시오.”

 

  주방장의 말에 나인과 리온이 다시 한 번 인사를 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 가 자리를 찾아 착석 했다. 양 옆으로 탁자를 전부 밀어 신랑과 신부가 지나갈 자리를 만들고 꽃과 들풀로 장식한 것이 평소 식당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바가 있었다. 어떻게든 자리를 만들어 내어 초대 받은 이들이 편하게 머무르다 갈 수 있도록 배려한 것도 보였다. 주변의 말소리에 귀기울이다보면 식당이 늘어서 있는 이 거리의 많은 상가들에서 하객들이 식사를 하고 갈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 해 주었다고 하기도 했다.

 

  “참 다정한 사람들이네.”

 

  나인이 속닥거리며 제가 들은 말들을 전하자 리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레본의 작은 마을. 다정한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귀족들의 하룻밤 파티보다 호화롭진 않지만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예식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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