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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결혼할까?

1

​스비마요, 릭베논

 똑똑. 가볍게 손목을 튕기며 두드려서 나는 노크 소리. 문에 달린 작은 창을 커튼으로 가려 만든 짙은 어둠 속에서 힘을 잃고 흔들리던 베논의 고개가 아래로 푹 꺼졌다. 감겨있던 눈꺼풀이 무겁게 떠지고 초점이 흐린 검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졸았나. 신전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짧은 시간도 버티질 못하다니. 쌓인 피로가 생각보다 많은 모양이다.

 

 “무슨 일이지.”

 

 그 사이에 푹 가라앉은 목소리가 듣기 싫다.

 마차 문이 열리고, 환하게 들어오는 빛에 인상을 찡그리며 주변을 살폈다. 신전과 야니크가를 자주 오가며 안면을 익힌 마부와 계절에 비해 조금 얇아 보이는 정장을 차려입은 이가 긴장한 표정으로 나란히 서 있다.

 저 남자는 처음 보는 이다. 상기된 볼과 옅게 풍기는 포도주 향. 차림새로 봤을 때 넥타이가 자리 잡고 있었을 가슴은 비어 있었고, 전체적으로 빳빳하고 풀을 먹인 것 같은 옷깃에 비해 셔츠 단추는 세 개쯤 풀려 있었다.

 어두워야 마땅할 밤거리는 번쩍거렸다. 깜박깜박 빛을 잃어가는 가로등의 사이를 연결하는 밝은 등불 탓이다. 붉은 종이 위로 그려진 별이 안에서 흔들리는 불꽃에 노랗게 빛났다. 끝에 매달린 스타 캐처. 오가는 사람들을 따라 흔들리는 것이 구슬 딸랑이는 소리를 냈다.

 마차가 지나가야 하는 거리에 자리 잡은 가게들은 전부 문을 활짝 열고 있었다. 가을치고는 쌀쌀하지 않다고 하나 저렇게 활짝, 그것도 오랜 시간 열어 놓았다간 냉기가 돌아 손님이 하나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문을 머릿속에서 꺼내 읽은 것처럼 앞에 서 있던 남자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만, 오늘은 제 친구들의 결혼식이라서 이 근처 가게를 통 크게 빌렸습니다! 그래서 이 거리를 마차로 통과하기는 어려우실 것 같습니다.”

 

 이 길은 사용하지 못하니 돌아가라는 뜻인가.

 

 긴장한 남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마 마부에게 이 마차의 행선지와 타고 있는 사람에 대한 말을 들어서겠지. 술기운을 얻어 용기를 냈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눈동자는 제 앞에 있는 이가 얼마나 긴장을 하고 있는 중인지 알려준다.

 고개를 왼쪽으로 약간 기울여 마부와 남자의 뒤에 서 있는 커플을 보았다. 그들과 마차 사이의 거리는 하얀 턱시도와 하얀 드레스를 입은 채 서로를 마주 보며 웃고 있는 얼굴이 피로에 찌든 시야에 선명하게 담길 정도였다.

 그들은 손을 잡고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어찌나 사랑이 가득한지, 얽히는 시선에서 곧 꿀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 같다. 입술이 계속 움직이는 걸 보니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았고,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았지만 재미있는 내용을 이야기하는 듯 그들은 웃기 바빴다.

 목에 꽉 조인 나비 모양의 넥타이와 온통 새하얀 턱시도, 전체적으로 뚝 떨어지는 라인이지만 어깨에 레이스로 포인트를 주어 심심하지 않게 만들어진 드레스를 보다가 눈을 감았다. 얽힌 손가락에서 반짝이는 반지의 디자인이 궁금해진다.

 

 “..이 길 말고 다른 길로 돌아가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남자는 한시름 덜었다는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조심해서 돌아가시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통통 튀어 파티를 하는 곳으로 가는 모습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

 마부는 이제 출발하겠다는 말을 하며 문을 닫았다. 다시 찾아온 어둠.

 

 베논은 손바닥을 펼쳐 가슴 위에 얹었다. 볼록 튀어나온 반지의 감촉이 느껴진다. 훈련을 하거나 능력을 사용하면 망가질 수도 있으니, 손가락에 끼지 말고 목에 걸고 다니라고 당부하던 아우릭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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